
이 책의 원제는 ‘Complications’이다. 의학용어로 ‘합병증’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하지만 이 책 전체적 내용으로 보아 Complication이라는 단어가 갖는 본래의 뜻인 ‘복잡성’이라고 해야 맞을 듯 싶다. 이 책이 말하는 의학에서의 복잡성은 첫째, 의사라는, 고도의 전문적 집단- 적어도 일반인이 볼 때에는-이 가진 본질적, 실체적, 그렇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감추어진 직업적 불확실성 내지는 오류가능성이며, 둘째는, 현대의학이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병리적 불확실성 내지는 불가사의들이며, 셋째는 의사로서의 의료행위현장 자체가 내포한 상황적 내지는 선택의 불확실성이다. 따라서 의학은 본질적으로 자체 내의 모순과 불안정성을 내포한 ‘불확실한’ 학문이라는 것이 결국 이 책 전체의 맥락이었던 것 같다. 번역한 이의 제목 짓는 센스가 나를 당황시킨다.
부제에도 나와 있듯 보스턴의 한 외과 레지던트가 매일매일 환자들을 보면서 부딪치고 목격했던 의료현장에 대한 기록으로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의 현실이 맞지 않는 면이 있긴 하지만 현대의학의 ‘불확실성’ 그 자체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오류가능성>에서는 의사들의 오류가능성을 짚어보면서, 어떻게 해서 의료과실이 발생하고, 풋내기 의사가 어떻게 칼 쓰는 법을 배워 가는지,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이며, 그런 좋은 의사가 어떻게 나빠질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도제식 교육방식 속에서 환자는 인턴이나 레지던트에게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다. 누구나 풋내기 의사보다 경험 많은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싶을 것이다. 처음에 환자의 기관을 찾지 못해 카테터 삽관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인턴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의사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의사들의 수련과정을 잘 알고 있어 인턴이나 레지던트에게 진료를 받는 것을 기피하기도 한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도 하다못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을 때도 견습생보다는 원장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머리를 맡기는 편이다. 미용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견습생에게 깎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의학도 마찬가지이다. 도제식 교육방식 속에서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인턴이나 레지던트에게 환자를 볼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할 것이다.
2부 <불가사의>에서는 의학의 수수께끼와 미지의 세계, 그리고 그에 맞선 싸움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물리적 설명도 불가능한 극심한 요통을 겪는 건축가, 임신기간 내내 지독한 구토증을 겪어야 했던 젊은 임산부, 설명할 수 없는 심한 안면홍조로 직장에서 좌절을 겪어야 했던 한 텔레비전 여성 뉴스캐스터 등의 이야기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의 고통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불완전한 과학인 의학 속에서 인간적인 면을 통해 그들과 함께 공감을 한다는 것이 그 불완전성을 조금이나마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3부 <불확실성>에서는 의학의 불확실성 자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왜냐하면 의학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흥미로운 것은 의학에 종사하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모르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현명하게 그 무지와 대적할 것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학은 가능성, 즉 확률에 의한 학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술의 성공률 역시 보장이 되지 않는 확률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 자신도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부딪쳐 고뇌에 빠지게 되겠지만, 그 불확실성이 있기에 현대의학이 한걸음씩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권위적인 자세보다는 겸손한 태도로 환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의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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