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막연하게 꿈꾸어 왔던 이상적인 의사상은 슈바이처였다. 그러나 그가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백인우월주의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자신의 일생을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해 봉사한 그의 업적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그는 사회의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인식하지는 못했던 의사였다.

하지만 세균이든 사회체제이든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좀먹는 것이라면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맞섰던 진정한 큰 의사, 노먼 베쑨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은 '노먼 베쑨'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중국 황석구의 긴박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베쑨의 조부모와 부모 때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베쑨 일가의 일대기서부터, 베쑨의 출생 성장을 차근차근 다루고 있다. 나는 책장이 어떻게 넘어가는지도 모른 체 책에 빠져들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전기에 대한 편견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글이었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된다. 노먼 베쑨의 성장을 그린 1부 그리고 베쑨이 결핵으로 죽음만을 기다리다가 극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그린 2부 그리고 나머지의 삶을 열정으로 바치고자 의지를 쫓아 스페인으로 향한 것이 3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끝가지 질병과 싸운 중국에서의 삶이 4부로 기술되어 있다. 역시 가장 감명을 크게 받은 곳은 4부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한참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과 나의 삶을 돌아보는 회한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베쑨이 처음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흉부외과 의사로서였지만, 그는 또한 화가, 시인, 군인, 비평가, 교수, 연사, 발명가, 의학자로서의 재질도 발휘한 사람이었다.


결핵의 수술적 치료법 개발 등 실력 있는 의사로서의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스페인의 반파쇼 투쟁,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과 항일 투쟁에 몸 바쳐 싸운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의 인류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결핵의 치료법을 개발하고도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자 빈부 격차에 따라 의료 혜택의 차이가 나는 사회구조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캐나다의 공중보건제도 확립에 앞장서게 된다.


백구은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전쟁터에서 ‘의사들이여, 부상병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대들이 먼저 그들을 찾아가시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신의 열정과 능력을 다하여 파시즘과 반동에 대한 투쟁 속에서 그는 치료약을 구하지 못해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노먼 베쑨이 자기 시대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해나감으로써 역사의 진보에 기여했다.


베쑨의 삶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의사로서의 삶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의사는 질병뿐 아니라 사람, 사회를 돌볼 줄 알아야 진정한 의사라는 것을 말이다.

Posted by 날쌘갈색여우
,